대통령 파면 이후 대선까지 달려온 60일간의 레이스가 끝났다. 기간은 짧았지만 전례 없이 요동치며 표심을 흔들었다. 정권교체 여론이 우세한 상황에서 여러 변수가 교차하며 판세와 뒤섞였다. 각 정당은 진영을 결집하는 데 주력했고 선거 막판에는 네거티브 공세가 난무했다. 본투표 일주일을 앞두고 겨우 공약집을 발간할 정도로 국민의 알권리와 정책 경쟁은 뒷전으로 밀렸다. 이번 대선의 변곡점으로 남을 7가지 결정적 장면을 되짚어봤다.
이재명(가운데)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4월 27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수도권·강원·제주 경선 및 최종 후보자 선출 대회'에서 김동연 후보(오른쪽), 김경수 후보와 함께 인사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바다이야기 다운로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지난 4월 27일 누적 최종 득표율 89.77%를 얻어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경쟁자인 김동연 경기지사(6.87%), 김경수 전 경남지사(3.36%)는 한 자릿수 득표율에 그쳤다. 이른바 '구대명'(90% 득표율 달성)은 현실이 됐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당 경선에서돈굴리기 이재명 후보가 거둔 경선 득표율(50.29%)을 한참 넘어섰고, 역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과 비교해도 최고 득표율을 기록한 압도적 승리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4월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배임ㆍ성남FC 뇌물' 1심 속행 공판단타매매 이 끝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확고한 지지세를 입증했지만 여전한 '사법 리스크'로 대권 가도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후보 선출 나흘 만인 5월 1일 대법원은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깨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사건은 넘겨받은 서울고법 재판JCE 주식 부는 이례적으로 속도를 내며 의지를 보였지만, 결국 "공정성 논란"을 이유로 첫 재판을 대선 이후인 6월 18일로 연기했다. 이재명 후보가 당선될 경우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명시한 헌법 84조 논쟁이 다시 불붙을 전망이다.
②국민의힘 '강제 단일화' 파문… 후보 교체 무위로
김문수(오른쪽)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달 8일 서울 국회 사랑재에 위치한 커피숍에서 단일화 협상을 위해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은 최종 후보 선출 과정에서 무리수를 자초했다. 대선 후보 등록 마감 하루 전인 지난달 10일 이른바 '강제 단일화'로 전례 없이 후보를 바꾸려다가 논란만 키웠다.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김문수 후보가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의 단일화를 외면하자 국민의힘 지도부는 '편법'을 동원했다. 심야에 비상대책위원회와 선거관리위원회를 소집해 김 후보의 후보 자격을 박탈했다. 이어 새벽 3시부터 불과 1시간 동안 접수하는 꼼수로 끝내 한 전 총리를 후보로 내세웠다. 상식과 국민 눈높이를 무시한 초유의 후보 교체 시도는 결국 철퇴를 맞았다. 후보 교체 찬반을 묻는 당원 투표는 최종 부결됐고,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강제 단일화를 지켜본 보수와 중도 유권자들의 실망감이 고조됐다.
③실언에 눈살… '미스 가락시장·커피 원가 120원'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19일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어떤 분이 커피를 8천 원에서 1만 원 받는데 원가가 120원이더라 했다. 커피 관련 소상공인이 폭리를 취하는 것처럼 들린다"라며 이재명 후보를 비판했다. 연합뉴스
말실수와 구설도 끊이지 않았다. 김 후보는 선거운동 첫날인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상인들과 간담회 자리에서 같은 당 의원인 배현진(재선·송파을) 의원을 향해 "'미스 가락시장' 이렇게 뽑았으면, 홍보대사로"라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성차별 발언을 한 데 대해서 뒤늦게 사과했지만, 시대착오적 발언에 대한 비판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김 후보의 과거 발언을 망라한 '김문수 망언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재명 후보의 '커피 원가 120원' 발언도 분노에 불을 지폈다. 이재명 후보가 16일 전북 군산 유세에서 "커피 한 잔 팔면 8,000~1만 원을 받을 수 있는데 (커피) 원가가 알아보니까 120원이더라"고 말한 게 빌미가 됐다. 민주당은 맥락이 왜곡됐다며 해명했지만, 국민의힘은 이와 함께 '호텔경제론'을 비롯한 이재명 후보의 경제관을 문제 삼으며 공세에 열을 올렸다. 민주당이 "커피 원가가 120원인데 너무 비싸게 판다는 이 후보 발언에 수많은 자영업자들은 가슴을 쳤다"는 김용태 비대위원장의 페이스북 글을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하자, 국민의힘은 이재명 후보를 무고와 허위사실 공표 등 혐의로 맞고발했다.
④尹 등 떠밀려 탈당…국민의힘 골머리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서울 중구 메가박스 동대문점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 관람을 마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뉴시스
첫 대선 후보 TV토론회를 하루 앞둔 지난달 17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국민의힘을 탈당했다. 동시에 "김문수 후보에게 힘을 모아 달라"는 지지 선언도 남겼다. 앞서 국민의힘에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지 못하고 '보수 텃밭'에서도 지지율이 흔들리는 등 위기감이 감지되자 탈당 압박이 거셌다. 90년생 김 비대위원장은 취임하자마자 윤 전 대통령에게 "대선 승리를 위해 탈당해야 한다"고 공개 요구했다. 그러나 마지못해 등 떠밀려 떠나는 뒷모습에 감동은 없었다. 국민을 향한 사과나 반성 메시지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탈당 이후에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관람하고,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집회에 김 후보 지지 호소문을 보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을 그었다. 당헌을 개정해 대통령의 당무 개입 금지를 명문화하고,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도 무효화하겠다고 밝혔다. 김 후보는 "윤 전 대통령은 이미 우리 당도 아니고, 탈당했다"며 거리를 뒀다.
⑤정책 실종, 최악의 네거티브 쏟아진 토론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왼쪽부터), 민주노동당 권영국, 국민의힘 김문수,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 후보가 지난달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정치 분야 TV토론회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TV토론은 역대 최악의 네거티브로 흘렀다. △경제 △사회 △정치 분야로 나뉘어 세 차례 토론회를 열었지만 국정 운영과 정책 비전을 진지하게 논의하는 모습은 실종됐다. 뾰족한 검증보단 상대방을 헐뜯어 각 진영의 지지세를 결집하는 데 골몰했다. 이재명 후보의 사법 리스크, 가족의 도덕성 문제가 주로 타깃이 됐다. 급기야 마지막 정치 분야 토론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는 이재명 후보 아들이 과거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성희롱성 댓글을 지적하기 위해 여성 혐오 욕설을 여과 없이 읊었다. 부정적 여론이 확산하자 이준석 후보는 30일 당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부적절한 표현으로 인해 많은 분들께 실망과 상심을 안겨드렸다"며 사과했다. 진흙탕 싸움 와중에도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계엄에 대한 단죄 요구는 물론, 차별금지법과 노란봉투법 같은 진보진영의 의제를 공론화하며 눈길을 끌었다.
⑥김문수-이준석 동상이몽…단일화 불발
김문수(왼쪽)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19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약자와 동행하는 서울 토론회에 참석해 있다. 하상윤 기자
막판까지 줄다리기가 이어진 보수 진영 단일화는 끝내 불발됐다. 이재명 후보의 대세론을 꺾기 위한 변수로 김 후보와 이준석 후보의 단일화에 이목이 쏠렸지만, 양측의 '동상이몽'에 불과해 진지한 논의조차 없었다. 김 후보가 사전투표 시작 전날인 지난달 28일 밤 이준석 후보와 단일화 담판을 위해 국회 의원회관을 찾아갔지만, 만남은 불발됐다. 권성동 국민의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본투표 하루 전까지도 "'이재명 범죄 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 김문수 후보에게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이준석 후보와 개혁신당은 완주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심지어 "김 후보는 이미 분명히 졌다"며 "단일화 여부와 관계없이 어떤 방식으로도 이길 수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김 후보와 이준석 후보가 각자도생하면서 이번 대선은 이재명 후보를 위시한 3자 구도로 치러졌다.
⑦또다시 불거진 사전투표 부실 관리 논란
제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일을 사흘 앞둔 지난달 26일 서울 중랑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대선 사전투표관리관 교육에서 중랑구 선관위 관계자들이 투표함 봉함 등 절차를 시연하고 있다. 박시몬 기자
이번 대선에서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 관리 부실이 도마에 올랐다. 지난달 29, 30일 실시된 사전투표는 역대 두 번째 투표율(34.74%)을 기록하며 유권자의 뜨거운 참여 열기를 입증했다. 그러나 투표소 곳곳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에서 투표용지를 수령한 관외선거인의 기표 대기줄이 투표소 밖까지 이어졌고, 강남 대치동 사전투표소에선 투표사무원이 배우자 신분증으로 대리투표를 하는 기상천외한 일도 벌어졌다. 노태악 선거관리위원장은 부실 관리 논란에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선관위는 유사사례 재발방지를 위한 지침을 내리고 경찰과의 협력을 강화했다. 노 위원장은 "소중한 한 표 한 표를 정확하고 빈틈없이 개표해 주권자인 국민의 뜻이 온전히 나타나도록 하겠다"며 선거 결과를 존중해달라고 당부했다. 김소희 기자 kim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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